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슬람 카리모프 (문단 편집) == 인권 탄압과 학살 == 카리모프는 1999년 AFP 통신과의 회견에서 “나는 국가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200명의 목을 자를 수도 있다. 내 자식들이라도[* 그리고 여기의 첫 제물이 장녀인 굴노라 이슬로모브나 카리모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카리모프는 약속대로 모든 직위를 박탈하고 감금하는 조치를 취했다.] 국가에 위해가 된다면 내 손으로 직접 목을 치겠다.”고 말했을 만큼 공포를 조성해 일각으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 내에서 가장 유능하고 폭압적인 보안대의 수장”이라는 말을 듣을 정도로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데, 이에 걸맞게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약 10,000명에 달하는 숫자의 [[정치범]]들이 감옥에 들어가 있으며 정치범들은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전기고문과 구타 등을 당하거나 [[강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06년에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된 정치범 아잠 파르모노프는 우즈베키스탄 당국이 그에게 복면을 씌우고 구타를 하면서 거짓 자백을 강요했으며, 파르모노프의 손톱과 발톱에 못을 박거나(!), 가족들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7147089|자료]] 또한 정치범들에 대한 엉터리 재판도 행해지고 있으며, 정치범들은 최악의 수감 환경에서 고문을 받고 심지어 당국이 그들의 형기조차 멋대로 연장하고 있을 정도며[*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정부를 비판한 일 때문에 1999년 구금된 리포터 유스프 루지무라도프(Yusuf Ruzimuradov)는 아직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국외 [[라디오]] 수신이 차단되고 [[전화]]는 철저히 도청당하고 있다. 이에 휴먼라이츠 워치는 "우즈베크 당국이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정치범에 대해서도 적절한 치료 등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는 [[국제인권협약]]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우즈베키스탄 정부를 비판했다. 심지어 '''반대하는 자를 산 채로 끓는 물에 삶아 죽이거나''' 고문하는 등의 만행까지 저질렀다. [[팽형]] 항목 참조. 한편 2003년 제정된 법에 의해 카리모프 가족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카리모프는 가족이 범죄를 저지르면 자기 손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고, 부패한 장녀를 감금하므로써 그 약속을 지켰다. 문제는 장녀가 단지 카리모프의 신경을 긁어서 열받은 카리모프가 굴다라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 집행한 거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증언은 카리모프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영국 대사의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증언이다. 대사의 증언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문, [[납치]], 살해, 부정부패, 감시 '''경찰에 의한 [[강간]]'''이 벌어진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은 경찰국가라고 불리는데 실제로 우즈베키스탄 거리에 서 있는 교통경찰은 운전자가 면허증을 챙겼는지 확인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사복 경찰은 관광객이 금지구역에서 사진을 찍는 걸 보면 바로 검거하는데 그 이유는 막대한 벌금을 매기지 않는 대가로 경찰들이 [[뇌물|하루치 일당]]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체 시위에 대비하여 관중 수용규모 10,000여명에 불과한 분요드코르의 홈구장 자르스타디움에서 경기가 벌어지면 무려 1,200명의 경찰이 동원된 일이 있을 정도로 시위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러다보니 우즈베키스탄인들 사이에서는 경찰을 부르는 은어까지 나왔는데 바로 "[[오이]](현지어 Bodring)"다. 녹색 제복을 입고 선 경찰을 긴 오이에 빗댄 것으로 사람들은 경찰이 다가오면 "오이가 온다.(Bodring kelyapti.)"라고 말한다. 또한 많은 경찰수에 빗대서 ‘거리의 나뭇잎보다 경찰이 많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다. [youtube(8a0PLIY_l28)] 이슬람 카리모프 통치 시기에 일어난 가장 유명하고 악명높은 학살은 바로 우즈베키스탄 버전 5.18이라고도 불리우는 '''2005년 안디잔 학살'''이다. 안디잔 학살이란 우즈베키스탄 동부 안디존(Andijon, 영어로는 안디잔 Andijan[* 안디잔은 러시아어 표기(Андижан, Andizhan)에서 나온 말이다. [[우즈베크어]]의 경우 옆동네의 [[페르시아어]]의 영향으로 원래 'a' 발음이 'o'에 가깝게 변하고, [[모음조화]]가 깨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는데 러시아식 표기는 이를 반영하지 않은 표기가 많아 이렇게 된 것. 이슬롬 카리모프가 이슬람 카리모프로 쓰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하는데, 학살이 일어난 안디잔은 무능한 정부 대신 이슬람 단체들이 활성화돼있던 곳이었는데, 이 지역 이슬람 단체들은 무슬림 소기업가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과부]]들과 고아들을 도우며 소액금융과 구호활동 등을 맡아 했다.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높아지자 이슬람 세력이 그 빈 자리를 메우며 신망을 얻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슬람 해방당]]’라는 무슬림 그룹이 정부 전복과 테러공격을 꾀했다며 2004년 6월 이 조직 회원 23명을 잡아가둬 버렸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대테러전 명분을 빌려, “극단주의 테러용의자 23명을 체포해 재판 중”이라고 밝혔으나 주민들은 “이슬람 신용기관과 협력해온 사업가들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이슬람 단체들과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고, 반정부 시위가 계속됐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시위는 갈수록 격해졌고, 2005년 5월 10일부터는 반카리모프 계열 주지사 강제 축출까지 겹치면서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이에 2005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안디잔에 계엄군을 투입해 시위대를 향해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고 정부 주장에 의하면 187명이 죽었다지만, 실제론 약 천여 명이 죽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현지인들은 2,500명 이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디잔 학살 사건 당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외신들의 현장 취재를 철저히 봉쇄했을 뿐 아니라,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국 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까지 내보냈다.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 있던 외국인 선교사들도 모두 내보내졌고, 지금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우즈베키스탄 방문은 극도로 제한돼 있으며, 외국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활동도 사실상 봉쇄돼 있었다. 현재도 이 사건에 대해선 신군부하의 [[5.18 민주화운동]]처럼 철저히 보도통제가 이루어져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즈베키스탄인들도 어떤 참극이 벌어졌는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안디잔 학살에 대해 증언하려는 자들에게[* 해외의 외신기자들도 포함] 갖은 방식의 보복을 자행했으며 외국인이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안디잔 학살 이야기를 하면 [[코렁탕]]을 마실 수 있으니 주의하자. 현재 카리모프가 죽고 그나마 개혁주의자인 미르지요예프가 새 대통령이 된 이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민주화 및 자유화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안디잔 학살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이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금기시되고 있다.[* 미르지요예프도 카리모프 정권 치하에서 국회의원, 총리직을 지내며 테크노크라트로 성장한 사람인 데다 안디잔 학살 사건 당시 카리모프의 안디잔 진압을 지지했다.] 웃긴 사실은 이 학살 사건을 대하는 강대국들의 태도다. 2005년 안디잔 학살이 벌어졌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치안유지를 위한 조치는 정당했다."며 카리모프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중국은 "남의 나라 일엔 끼어들지 않는다."며 침묵을 지켰다. 국제사회에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자 당시 미 백악관 대변인은 "사태의 원인이 시위대에게 있다."며 카리모프를 두둔했으머 유럽연합(EU)의 비난은 형식에 그쳤다고 한다. [[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62238|기사]] 같은 시기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원개발 교류 등을 위해 카리모프 대통령을 만난 바 있는데, 이 내용은 2007년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의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앞둔 시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120401035932275002|문화일보 기사]]에 언급된 바 있다. 특히 카리모프 정권이 국제사회에서 가장 욕을 먹은 이유가 안디잔 학살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당국이 국가산업인 면화재배에 청소년과 일반 주민을 강제동원하며 이 과정에서 각종 인권탄압이 벌어진 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우즈베키스탄]] 항목 참고. 2014년에는 [[지학순]] 정의평화상 수상 단체인 ‘우즈베키스탄 인권연합(Human Rights Alliance of Uzbekistan)’의 대표 옐레나 우를라예바(Елена Урлаева, Yelena Urlayeva)에게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국내 인권 시민 단체들이 항의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루어지는 목화 산업의 강제노동에 대해 비판했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매년 목화 수확기에 '''유치원생에서부터 청소년과 교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원을 장기간 면화 수확에 강제 동원하는 노역에 가까운 짓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2014년 5월 31일 경찰에게 체포돼 18시간 심문과 구타, 성적 모욕을 당했다. 이 때 이루어진 조사는 '''대단히 모욕적이고 치욕적이였다.''' 그녀에게 고문관들은 성분이 불분명한 신경진정제를 자백을 받으려고 3차례나 주사한 것으로도 모자라, 조사 과정 동안 경찰은 그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다. 또한 경찰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고 수차례 구타하면서 그녀가 녹화해 담은 피해자 인터뷰 메모리를 빼앗았다. 심지어 그러고도 의사들은 그녀가 데이터 칩을 은닉하고 있다고 의심하며 경찰이 그를 잡고 있는 시간 동안 '''[[하혈]]할 때까지 [[질]]과 [[항문]]을 검사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강행했다.''' 또한 그녀는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할 것을 강요받았고 나체인 상태로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http://m.pbc.co.kr/paper/view.php?cid=575713&path=201506|자료]]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7640242|기사]] 이 사람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들은 우즈베키스탄 당국이 동원한 용역들에게 구타당하거나 구금되고 있으며, 특히 인권운동가의 대표 우를라예바는 정신병동에 감금되고, 강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투약당했다고 한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13년 동안 우즈베키스탄 주민들이 국제인권단체에 접수한 인권보호 요청이 11,858건에 달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 학정의 결과로 우즈베키스탄의 [[세계의 자유]] 지수는 2006~2009/2016~2017년엔 고작 3점, 2010~2015년에도 4점을 기록하여 오늘날로 치면 [[에리트레아]] 포지션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의 자유 최하위권을 놓치지 않는 국가로 전락했다. 2008~2017년까지 10년 가까이 같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보다도 낮게 나왔고 2016~2017년에는 무려 '''[[북한]]'''하고 동점이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그나마 카리모프 사후에는 대폭(?) 올라 2023년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세계의 자유 지수는 12점이다. 다만 카리모프가 중앙아시아를 극단주의 테러가 없는 안전한 국가로 만들었다는 평도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결과적이고, 아프가니스탄이 그의 영향력으로 극단 테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지 의문인 상황. 오히려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할 짓을 대통령인 이슬람 카리모프가 대신 했다고 보는 게 나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